[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이 강화된 현 제도는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의료계는 이러한 구조가 필수의료를 위축시키고, 고위험 진료를 회피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해 왔다.
최근에는 의료사고 제도의 변화를 모색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나왔다. 정부는 환자 보호 강화를 위해 '환자대변인제도'를 도입했고, 고위험 진료를 수행하는 의료진과 환우회는 형사 고소보다는 조정 중심 해결을 촉구하며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각각 정부와 민간의 대응처럼 보이지만, 결국 의료사고 대응 체계의 합리화와 신뢰 회복이라는 동일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은 이 흐름이 의료사고 제도 전환의 신호라며 두 사례를 상징적인 계기로 평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의료사고 피해자 지원 강화를 명분으로 변호사 50명을 '환자대변인'으로 위촉했다. 의료사고 소송 경험이 있거나 의료인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가 대상이며, 건별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번 사업에는 총 3억원의 국비가 배정됐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3억원 예산으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응하겠다는 건 정부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단순히 피해자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의료사고의 구조적 본질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대한소아심장학회는 소아청소년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고위험·고난도·중증·응급 등 필수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촉구했다.
두 단체는 "소아청소년 환자의 치료 과정 중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신속히 구제해야 하며, 과도한 분쟁이 해당 필수의료 행위의 위축이나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중상해나 사망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위로와 경위 설명, 과실 시 신속하고 합리적인 배상 실현을 위해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환우회는 필수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의 최선의 노력을 존중하며, 형사 고소보다는 의료분쟁조정 절차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한 두 단체는 필수의료 분야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위해 (가칭)'의료사고심의위원회' 설치와, 이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수사기관에 공소 제기 자제를 권고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을 제안했다. 수사당국은 위원회 권고를 존중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료과실로 인해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동시에 필수의료 분야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등 공적 배상체계를 마련할 것도 제안했다.
특히 두 단체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의 조정·중재 절차가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이며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요구했다.
김 의장은 이 성명에 대해 "결국 리스크를 수사로 풀자는 게 아니라 구조적 해결을 모색하자는 취지"라며, "의료계만을 위한 개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사법체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의료사고 형사처벌 구조가 필수의료 인력의 위축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김 의장은 "의사들은 환자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조가 계속되면 10년 뒤엔 외과 수술을 할 의사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장은 "지금 필요한 건 허와 실을 정확히 따져 의료사고 제도의 미래를 국민과 함께 설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현재 의료사고 형사처벌 구조에 대한 비교법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오는 7월에는 최종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공청회 등 제도 개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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