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영역' 진입 시도에 의료계와 갈등 고조‥평행선 싸움

X-ray부터 치매진단서까지‥'의료 행위' 두고 벌어지는 끝없는 줄다리기
한의계 "판결 따라 의료기기 사용 가능"‥필수의료 투입부터 진단서 발급도 요구
면허제도 흔드는 직역 충돌‥의료계는 '공개토론'으로 맞불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09 05:5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과와 한의과의 경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의료기기 판결을 기점으로 한의계는 '의과 영역'에 대한 진입 시도를 확대했고, 의료계는 이를 '면허제도 붕괴'로 규정하며 강하게 맞섰다.

한쪽은 '사용 권리'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면허 침해'를 외친다. 갈등은 다시 평행선을 그으며 격화되고 있다.

◆ 법원은 무죄, 한의계는 '면허 확대' 주장‥해석의 간극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는 한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 항소심은 엑스레이 방식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측정 결과를 보조자료로만 활용했으며, 영상 판독은 하지 않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를 두고 "법원이 한의사의 X-ray 사용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으나 의료계는 이러한 입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대법원은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한의학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본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해를 가할 위험이 현저히 낮은 일부 진단기기에 대해 제한적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밀도 관련 판결에 대해서도 김 대변인은 "의학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고 결과를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경우에 한해 무죄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며, 이를 방사선기기 사용 전반에 대한 허용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 혈액검사·주사 시술까지‥현장에서 벌어지는 혼선

법적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한의계의 실제 진료 행위는 의료계의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혈액검사, 리도케인·스테로이드 등 의과의약품 사용, 초음파·주사기기 시술 등 기존에 의사만이 다뤄온 치료 행위가 한의원에서 시행되는 사례가 속속 확인됐다.

특히 온라인에는 성병검사를 시행한다고 광고하거나, PDRN 주사, 자가골수 흡인 농축물 관절강내 주사(BMAC) 등을 시술 중이라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진단기기와 치료법은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도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것은 학문적 경계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박상호 위원장 역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박 위원장은 "이는 단순한 직역의 혼란을 넘는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말로는 치료의 보조행위이며 선택권 보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의료법 위반일 뿐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면허제도와 이원화된 보건의료 체계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 한의사-의사의 불분명한 경계 계속

의료계는 강력한 제재가 부재한 탓에 한의계의 요구가 점점 도를 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공공의료 인력난을 계기로 한의계가 대체 인력으로 나선 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대생 집단 휴학과 전공의 수련 거부로 인해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되자, 필수의료 분야에 한의사 투입을 제안했다.

한의협은 "한의사들이 이미 의대 교육의 75%를 수료한 만큼, 교차 인력을 통해 의료 현장에 빠르게 투입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단순히 사람이 부족하다고 전문직을 대체할 수는 없다. 판사나 경찰이 모자란다고 아무나 임무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한의사단체가 라디오 등을 통해 한방난임치료의 효과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것도 논란을 키웠다.

한특위 이재만 부위원장은 "한방난임지원사업은 과학적 근거 없이 지자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장되고 있다. 중금속 등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 기준이 부족해 모체와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염려했다.

갈등은 진단서와 치매특별등급 의사소견서 발급 권한 문제로도 번졌다. 지난 5월 2일,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진단서 및 소견서 발급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치매와 같은 복합질환은 고도의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으로,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만이 판단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재만 부위원장은 "치매 진단은 단순 문진이나 한방 원리로 접근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적 행위"라며 "향후 치매학회 등과 연대해 공식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끝나지 않는 직역 갈등 속에서, 의료계는 대국민 공개토론회를 공식 제안했다. 토론회 주제로는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와 과학적 근거 ▲한의약의 중금속 관리 기준 ▲한의대-의대 교육과정 비교 ▲진단서의 법적 공신력 문제 등이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의계와 의료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끝장토론' 형식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한특위는 이 논의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제도적 검증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이재만 부위원장은 "한의계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장을 과학과 법적 기준 위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의료계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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