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과 달리 급여 논의는 지연‥'자료 보완'이 큰 이유

정해진 검토 기간에 대한 압박‥제약사가 제출한 자료로 논의하지만, 보완 필요한 경우 많아
올해 '허가-급여평가-약가협상' 시범사업 계획‥등재 기간 최소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3-31 06:0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제약사가 치료제 급여 신청을 완료하면 환자들은 자연스레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과 달리 논의는 지연되곤 했다.

신청과 동시에 곧바로 암질환심의위원회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이 된 치료제도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정조차 안 되거나, 순서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생겼다.

이를 놓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급여 논의의 우선순위라고 할 기준은 없으나 대부분 '자료 보완'이 가장 큰 이유라고 답했다.

최근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연일 치료제의 신속한 급여를 요청하는 글들이 올라와 뜨겁다.

그 중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L858R) 치환 변이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에 급여가 확대됐다.

타그리소는 2019년 10월 첫 번째 급여 확대 신청 이후, 높은 약가와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 때문에 이미 네 번이나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고액의 비급여 약값을 부담하고 있는 해당 4기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의 불만이 고조돼 있던 상태였다.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10월 다시 한 번 급여 신청서를 제출했고, 올해 제2차 암질심에서 급여기준이 설정돼 후속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똑같이 청원이 올라왔던 한국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의 급여는 감감무소식이다.

엔허투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특정 표적 단백질에 결합, 단일 클론 항체(Antibody)와 강력한 세포사멸 기능을 갖는 약물을 링커(Linker)로 연결한 '항체-약물접합체(ADC)'다.

엔허투는 지난해 9월 허가를 받고, 지난해 12월 심평원에 ▲이전에 한 개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이전에 항 HER2 치료를 포함하여 두 개 이상의 요법을 투여 받은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의 치료에 급여 신청을 완료했다.

HER2란 암 세포의 표면에 붙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를 보내는 수용체로, 일반적인 암보다 진행이 빠르고 공격적인 특성을 보인다.

특히 유방암 환자 중 약 20%는 HER2 양성 유방암을 갖고 있는데, HER2 양성 유방암은 재발 및 전이를 일으킨다. 질병의 진행 속도도 빨라 예후가 더욱 좋지 않다.

지난 2월, 엔허투가 유방암 환자에게 희망이라며 등록된 국민 청원은 등록된 지 4일 만에 동의 수 5만 명을 기록하면서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다.

하지만 엔허투는 2차 암질심에서 심의됐으나 재논의로 결정됐다. 이유는 자료 보완이었다. 제약사는 심평원에 임상자료, 전문가 자문 등 급여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한국오노약품공업의 '비라토비(엔코라페닙)'는 2021년 8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치료에 국내 허가를 받고, 소수의 희귀암이라는 점, 유의한 임상적 효과가 있다는 점이 반영돼 2022년 1월 암질심을 통과했다.

반면 또 다른 급여 관문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태다. 오노약품공업은 심평원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는 등 협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라토비 역시 국민 청원글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BRAF V600E 변이는 전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에서도 5% 이내만 나타날 만큼 희귀한 편이다. 게다가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BRAF V600E 유전자 변이는 기존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예후가 좋지 않아 기대 여명이 1년 미만에 불과하다.

비라토비가 허가를 받기 전까지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은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비라토비는 '세툭시맙'과의 병용요법으로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에서 생존기간(OS)을 연장시켰다. 재발이 잦고 완치가 어려운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에도 처음으로 제대로 싸워볼 무기가 생긴 것이다.

해당 임상 결과를 기반으로 NCCN 가이드라인에서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의 2차 이상 치료에서 비라토비-세툭시맙 2제 요법만을 유일하게 권고하고 있다.

심평원 약제관리실 관계자는 "비라토비는 2022년 11월에 급여 결정을 재신청해 자료 검토 중에 있다. 급여 평가 등을 신속히 진행해 암환자의 건강보험 치료 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환자들은 제약사가 급여 신청을 했더라도 급여 논의까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 점에 계속해서 의문을 던졌다. 상정이 되지 않는 이유가 공개되지 않아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심평원 약제관리실 약제관리부 유미영 실장은 "별도로 만들어진 우선순위는 없다. 신속하게 평가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복지부와 협의가 되거나, 국민 청원 등이 제기된 약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속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든 절차는 '자료'가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유 실장은 "제약사가 급여 신청을 하면 심평원은 그 자료를 갖고 논의를 시작한다. 보완 자료가 거의 없을 수도 있고 요청을 했으나 관련 내용이 오지 않으면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다. 아주 희귀한 질환인 경우엔 전문가의 의견 요청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심평원도 정해진 검토 기간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요청한 자료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으나 실제로는 예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중질환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겠다는 심평원의 의지는 강했다.

이미 심평원의 급여평가와 건보공단의 약가협상을 병행하는 제도가 올해 1월부터 적용됐다. '평가-협상 병행'으로 등재기간은 210일에서 150일로 단축됐다.

향후 심평원은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이며, 적절한 치료법이 없는 등 특수성이 인정되는 약제는 등재 기간 최소화를 위해 '허가-급여평가-약가협상'을 진행한다. 식약처 허가 신청과 동시에 급여 평가 및 약가사전 협상을 병행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동안 신약은 심평원의 급여 평가 후 건보공단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 순차적 방식이었다. 만약 급여평가-약가협상을 병행하게 되면, 심평원은 약평위가 개최되기 15일 전에 공단에 관련 자료를 제공해 사전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유 실장은 "현재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식약처 관련 부서와 대상 선정 및 관련 절차에 대해 협의 중에 있다. 올해 하반기 시범사업이 원만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정부와 협의해 합리적인 제도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