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전공의 복귀를 앞두고 '수련환경 개선'이 의료계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에 ▲윤석열 정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 중심 협의체 구성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 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 역시 수련환경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여러 법안을 발의했다. 전공의는 의료기관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생이자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료인의 지위를 동시에 갖지만, 주 80시간·연속 36시간까지 수련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 등 최소한의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료사고와 분쟁에서도 보호 장치는 미흡하다. 수련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수련환경평가 거버넌스에서도 전공의 대표성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서명옥 의원 개정안: 국가 지원 의무화·법률지원 확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전공의 육성 등에 관한 국가의 행정·재정 지원 규정을 재량에서 의무로 전환하고, 수련환경 평가 등 전공의 육성에 필요한 행정·재정 지원 근거를 명확히 했다.
해당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실은 "전공의가 개선된 환경에서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취지"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정 운용 상황과 보조금 관리 원칙을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등 육성지원 사업'에 2354억원, '전공의 등 수련수당 지급 사업'에 415억원 등 총 2768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두 사업은 '의료인력 양성 및 적정 수급관리 사업'의 세부 사업으로 필수의료·기피과목 전공의 수련환경 혁신 지원, 공동수련 시범사업, 수련환경평가 및 위원회 운영, 전문의 수급이 어려운 분야 전공의 수련수당 지원 등을 포함한다.
해당 개정안은 수련병원장에게 ▲의료사고·분쟁 예방 환경 조성 ▲발생 시 전공의 법률지원 ▲근로기준법 준하는 수련환경 마련 노력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최근 의료사고와 분쟁이 늘면서 전공의가 사건에 연루되는 빈도가 증가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19년 의료법 위반으로 입건된 의사는 1051명으로, 2010년 대비 약 105% 증가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입건 역시 같은 기간 21% 늘었다.
2000~2020년 1심 판례 분석에서도 의료인에 대한 형사판결 건수는 증가 추세를 보였고, 이 중 대부분이 의사였다.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실은 전공의가 교수·전문의 감독 하에 진료하더라도 단독 의료행위나 하급년차 전공의·간호사 관리 부실로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형사처벌이 의료사고 예방에 일정 부분 기여하더라도,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규정에서 의료인만 예외로 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병존한다.
의료계는 의료사고가 형사고소로 이어지는 구조, 의료 특수성 미반영, 손해배상액 증가, 명예 실추 위험 등이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진과 환자 간 소통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꼽으며 법적 분쟁 우려로 의료기관이 유감 표명과 설명에 소극적인 반면, 환자는 불신과 감정 악화로 고소·고발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실은 의료사고·분쟁 예방 환경 조성과 발생 시 법률지원을 수련병원장의 의무로 규정하는 취지에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공의는 수련생이지만 의사면허를 가진 의료인으로서 처방권을 보유하고, 환자 상태 파악과 처방을 직접 수행하기 때문에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의료사고분쟁조정법에 따라 전공의를 포함한 보건의료인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지만, 중대 과실 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사고·분쟁 예방 수련환경'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전공의 의료행위 범위 통제 필요성이 모호하다며 반대했다. 반면 의협은 법률지원 의무화가 분쟁 해결과 수련 몰입 환경 조성에 기여한다며 찬성했다.
근무시간 단축과 휴게시간 산입 문제도 논란거리다.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실은 수련시간 상한을 줄이면 총 수련시간이 감소하므로, 전문의 역량 확보를 위해 수련기간 조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2월 개정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내년 2월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하위 법령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학회는 역량 있는 전문의 양성과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해 충분한 임상경험과 수련시간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주 최대 80시간의 수련시간 상한을 두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는 주당 수련시간이 짧지만 그만큼 더 긴 전체 수련기간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수련시간 단축은 해외 주요국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전체 수련기간과 함께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연속 근무시간은 전날 근무와 당직 24시간에, 다음날 교육과 환자 안전을 위한 인계 시간 4시간을 더해 최소 28시간은 확보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병원협회도 응급·재난 대응과 의료인력 수급 현실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답했으나 전공의협은 주 64시간, 연속 24시간 제한을 요구하며, 장기적으로 주 52시간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정안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심의사항에 ▲전공의 수련 실태 파악 ▲의료사고·분쟁 예방 및 대응 ▲수련병원 의무 준수 평가 등을 추가하고, 위원 구성 시 의사회 소속 전공의 대표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을 포함하도록 했다.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실은 전공의 단체 추천 위원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수평위가 전공의 수련환경 관련 사안을 평가하는 만큼, 평가 대상인 의료기관 단체 추천 비중이 높으면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복지부는 전공의 참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전공의·수련병원·수련교육 전문가가 균형 있게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이 바람직하다고 전해왔다. 병원협회도 특정 직역 위원 편중이 위원회 심의 기능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해 전공의협은 수련 당사자인 전공의의 실질적인 의견 반영을 위해 전공의 단체 추천 위원을 과반 이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의협도 전공의대표 과반 포함이 정책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인다고 봤다.
박주민 의원 개정안: 전공의 대표 확대·적정 환자 수 규정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전공의 적정 수련시간 보장과 의견 반영을 위해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전공의 대표자 수 확대 필요성에는 서명옥 의원과 뜻을 같이했다.
또한 개정안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작성하는 수련규칙 표준안에 '전공의 1인당 담당 적정 환자 수' 항목을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위원실은 현재 표준안에 임금·근로시간·휴일은 규정돼 있지만 환자 수 관련 내용은 없으며, 환자 수 증가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와 환자 안전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공감했다. 그러나 산출 기준 부재를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전공의가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정 환자 수 기준 신설에 동의하며, 그 수준을 1대 15로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병원협회는 병원별·진료과별·지역별 상황이 달라 일률적 수치화는 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다고 반대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법안은 오는 18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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