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백신은 쏟아지는데…한국 NIP는 여전히 '반쪽 정책'

HPV·RSV·대상포진 등 새 백신 속속 등장, 지원 범위 제한적
인플루엔자와 달리 비급여 백신은 접종률 크게 뒤처져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19 11: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세계 백신 시장은 '신규 백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HPV(인유두종바이러스)는 2가·4가에서 9가로 발전했고, 폐렴구균은 7가에서 13가를 거쳐 15가·20가, 최근에는 성인 전용 21가까지 등장했다. 최신 백신 개발의 핵심은 더 많은 혈청형을 포괄해 질병 부담을 낮추는 데 있다. 이밖에도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와 대상포진 백신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현행법은 유병률이 높고 감염 확산이 잦은 감염병을 필수예방접종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은 도입 속도가 더디고 지원 범위도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내년부터 여성만 지원하던 HPV 백신 NIP 대상을 12세 남아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으로 무료 접종이 시작된 지 10년 만의 변화다.

다만 여전히 지원 백신은 4가(가다실4)에 머물러 있다. 고위험군 HPV 아형 가운데 약 7종에 대한 예방이 특히 중요한데, 아시아 지역에서 자주 관찰되는 52형과 58형은 9가 백신으로만 예방이 가능하다. 대한부인종양학회가 지난해 2가·4가 접종자에게도 9가 접종을 권고한 개정안을 발표한 것은 이러한 필요성을 방증한다.

이미 OECD 38개국 중 30개국은 9가(가다실9)를 무료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은 2016년부터 9가만 사용하고 있다. 대만 역시 한국보다 늦게 HPV 접종을 시작했지만 최근 남녀 모두에 9가 백신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의료계에서는 NIP 대상 남아의 연령도 추가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강하다. 오랜 기간 HPV 예방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남아의 경우 보다 적극적인 예방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시행한 초·중학교 입학생 예방접종 확인사업 결과, 2011년생 여아의 HPV 백신 1차 접종 완료율은 79.2%였던 반면 같은 해 출생한 남아의 접종률은 0.2%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남녀 모두에서 약 80%의 접종률이 이뤄져야 HPV 퇴치가 가능하다며, 고품질 백신 전환과 연령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HPV 국가접종 대상 확대와 고품질 백신 전환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질병관리청 이혜림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사업 확대에는 예산과 비용효과성뿐 아니라 백신 수급 가능성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에 추가 지원 방안에 대해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RSV 백신의 NIP 도입 목소리도 작지 않다. RSV는 영유아와 고령자에서 폐렴의 주요 원인으로,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수준의 유병률을 보인다. 국내에서 허가된 성인용 RSV 백신 '아렉스비'와 영유아용 예방항체제제 '베이포투스'는 아직 NIP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국회에서는 RSV를 필수예방접종에 포함하는 법률 개정안까지 발의됐지만 예방항체의 백신 분류 문제와 경제성 평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제도화는 더딘 상태다. 전문가들은 RSV 백신 공백을 방치하면 매년 반복되는 대규모 유행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상포진도 마찬가지다. 대상포진은 50대 이상에서 흔히 발생해 합병증으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국내에는 약독화 생백신(스카이조스터)과 유전자재조합 백신(싱그릭스) 두 종류가 유통되고 있으나 NIP에는 포함되지 않아 접종률이 낮은 편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19개국은 대상포진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NIP 여부는 접종률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국가 지원 덕분에 65세 이상 접종률이 80% 이상에 이르지만, 비급여 영역에 머무른 백신들은 낮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격차가 결국 예방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은 새로운 백신 편입에 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보편적 접종을 통해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NIP의 특성상 비용효과성은 중요한 고려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계는 예방접종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봤다. 장기적으로는 입원과 사망 감소, 의료비 절감, 생산성 손실 방지로 사회 전체 편익이 훨씬 크다는 설명이다.

HPV, RSV, 대상포진 사례는 모두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신규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있음에도 한국의 NIP 편입은 늦고 부분적이며, 각 감염질환별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형평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접종 확대를 결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정책이 국제적 흐름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K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국민이 예방을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면 접종률이 크게 뛰지만, 비급여 영역으로 남을 경우 접종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며 "NIP 여부가 곧 국민의 예방 기회와 건강 형평성을 좌우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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