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는 주사' 마케팅 기승…GLP-1 유사체, 치료인가 유행인가

여름철마다 반복되는 '감량' 열풍‥의료계, 미용 소비 흐름에 우려
치료제 넘어선 마케팅…진료과 불문하고 '비만 특화' 내세워 홍보
청소년·알약으로 진화‥더 낮아지는 약물 접근성, 더 커지는 윤리 부담
"누군가는 반드시 써야 하는 약"…'치료 자원 배분'이라는 새로운 숙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12 05:5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기온이 오르자 '살 빼는 주사' 마케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기자는 한 산부인과로부터 '위고비 다이어트 주사제', '강력한 체중 감소 효과 입증', '체중 관리를 돕는 비만치료제'라는 문구가 포함된 홍보 문자를 받았다. 해당 문자는 내원 상담을 유도하며, 치료제보다는 마치 감량 프로그램처럼 안내돼 있었다.

단순한 의학 정보 전달을 넘어, 비만 치료제가 미용 목적의 '감량 주사'처럼 소비되는 현상은 유튜브와 SNS에서도 손쉽게 확인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러한 흐름이 "비만을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는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진료 현장에선 처방 기준의 부적절함과 환자 간 형평성 문제, 약물 오남용 등 복합적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GLP-1 유사체(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등)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식욕 억제와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며 비만 치료제로도 각광받고 있다.

국내 출시 이후 내과·가정의학과뿐 아니라 산부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다이어트 주사'라는 이름으로 관련 시술과 상담을 홍보하고 있다.

다만 GLP-1 유사체는 일정 기준 이상의 비만 환자에게만 처방이 허용된 전문의약품이다. 정상 체중이거나 단순히 미용 목적의 사용은 부작용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약물의 의료적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비만연구의사회 전승엽 수석학술이사(잠실에프엠의원)는 "오남용은 절대 안 된다. GLP-1 유사체는 비만 치료제로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처방돼야 한다.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거쳐 처방받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문자로 받은 비만 치료 광고

이처럼 비만 치료제의 무분별한 사용을 경계하면서도, 진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현행 처방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불만도 크다.

현재 GLP-1 유사체의 국내 처방 기준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또는 고혈압·당뇨병 등 대사 질환이 있는 경우 BMI 27 이상이다. 이는 미국 FDA 기준을 반영한 것이지만, 한국인의 대사 특성과 체형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언급돼 왔다.

대한비만연구의사회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한국형 비만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으며, BMI 외에도 대사증후군 동반 여부, 심리적 요인, 체성분 등을 반영하는 새로운 기준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BMI 23~25 수준에서도 대사 위험이 높은 환자들이 많다. 현장에서는 약이 필요한 환자임에도 기준을 못 채워 처방을 못 하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GLP-1 유사체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주사제에 이어 경구용 알약 형태의 출시가 진행 중이며,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12세 이상 청소년에게까지 처방이 가능하도록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확산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있다. 특히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층이 유명인의 감량 사례를 접하고 GLP-1 유사체를 일종의 '다이어트 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한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가이젤 의과대학 리 M. 캐플란(Lee M. Kaplan) 교수 역시 GLP-1 유사체가 비만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감량용으로 처방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치료제가 미용 수단으로 소비되는 사이 정작 치료가 절실한 환자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였다.

캐플란 교수는 "비만 치료제의 안전성은 이미 확보돼 있지만, 제한된 자원을 불필요한 사람이 소비하는 구조는 문제"라며 "누군가는 반드시 이 자원을 써야 하는데, 그 자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는 공정성과 윤리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역설했다.

관련기사보기

[현장] 개원가 최대 비만학술대회, 'GLP-1 시대' 맞아 성황

[현장] 개원가 최대 비만학술대회, 'GLP-1 시대' 맞아 성황

[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개원가 최대 비만 치료 학술대회에 1500여명의 많은 비만 임상의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지난해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국내 도입을 계기로 비만 치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모습이다. 대한비만연구의사회는 16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36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춘계학술대회는 ▲비만개론 ▲비만체형 ▲탈모피부쁘띠를 주제로 3개의 강의장과 비만 전문 인증의 교육이 함께 진행됐다. 특히 비만개론 강의장에서는 GLP-1 치료제 사용 후 근감소를 방지할 수 있는 약물에 대한 강의와 비만치료제 다중

[수첩] 비만 치료서 GLP-1 급여 논의 필요하다

[수첩] 비만 치료서 GLP-1 급여 논의 필요하다

[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주제가 있다. 비만에 대한 GLP-1 제제 건강보험 급여 얘기다. 최근 비만은 전 세계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이슈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어찌 보면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전체 비만 유병률은 1998년 전체 26%에서 점차 상승해 2023년 37.2%에 달했다. 특히 비만은 여성(27.8%)보다 남성에서 더욱 심각하다. 국내 남성의 비만 유병률은 45.6%로, 2명 중 1명이 비만인 셈이다. 이는

개원가, 비만 치료 홍보 경쟁 과열‥진료과 불문하고 환자 유치

개원가, 비만 치료 홍보 경쟁 과열‥진료과 불문하고 환자 유치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최근 개원가에서 비만 치료를 내세운 홍보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에서 비만 치료를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피부과,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비만 치료를 홍보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비급여 시장 확대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개원가 관계자는 "비만 치료 관련 주사제나 시술이 환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기존에는 다루지 않던 진료과에서도 관련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특히 GL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