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1명에 흔들‥'진료 재개'가 뉴스가 된 지방의료의 민낯

'응급의료센터 정상 운영'…전문의 충원에 현수막까지
'의사 1명'에 달린 진료체계‥지방의료, 전문의 유무에 크게 흔들려
의료계 "회복 불가능한 구조, 근본적 개혁 없인 반복"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7-05 05:59

속초의료원 앞 현수막.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속초의료원 앞. '응급의료센터 정상 운영', '소청과 전문의 진료 개시'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병원이 정상 진료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이 현수막은 얼핏 보면 단순한 홍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역 공공병원이 겪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와 그 회복의 허약한 구조를 상징한다.

속초의료원은 최근 전담의 2명을 충원하며 응급의료센터 5인 전담체계를 구축해 4월부터 24시간 진료를 재개했다. 이 의료원은 고성, 양양, 인제 등 강원 영동 북부권 응급환자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으로 '정상 운영' 여부가 곧 지역 주민의 생명선과 직결된다. 병원은 이를 지역사회에 알리기 위해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세종충남대학교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병원은 잇따른 전문의 사직으로 지난 3월부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야간 진료를 제한해 왔지만, 최근 의료진 1명이 충원되면서 7월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한해 24시간 진료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단 1명의 충원이 병원의 진료 체계를 바꾸고, 이를 지역사회에 '뉴스'처럼 알리는 방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부 병원은 전문의 채용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거나, 외벽에 현수막을 걸어 지역 주민에게 알린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동시에, 병원 기능이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채용 실패의 반복이 아니라, 전문의 확보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적 위기라는 점이다.

의사 구인 사이트를 보면 '실수령 2.8억~3.1억, 월 15일 근무, 숙소 제공' 등 고연봉 조건을 내건 지방 병원 공고가 넘쳐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피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 1명의 지원자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일부 의료기관은 충원 실패로 특정 진료과를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있으며, 남은 과에는 업무 과부하가 누적되고 있다. 수천만 원대의 헤드헌팅 수수료를 감수해도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고, 연봉 인상 경쟁은 수도권까지 번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보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의사들의 진로 선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의정 갈등 이후 수련 포기, 전문의 시험 응시 포기 등이 누적되면서 필수의료 과목 자체에 대한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열린 '2025 젊은의사포럼'에서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꼭 전문의를 따야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임상 외 경로를 공개적으로 모색하는 분위기를 드러냈다. 데이터사이언스, 정책, 콘텐츠 등 교차 분야로의 진출이 늘고 있으며, 병원을 떠나는 일은 이제 '도피'가 아닌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결국 떠나는 후배를 붙잡을 수 없었다"며 "전문의들이 전문성을 유지한 채 지속 가능하게 의료현장에 머무를 수 있도록 유연한 고용구조와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필수의료 인력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병원 기능이 전문의 1명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는 지방의료 자체를 심각하게 흔들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해결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회복에는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며, 현재의 구조로는 필수의료 재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진료과별 학회와 의사회는 "말뿐인 선언만으로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 반복될 뿐"이라며, 정말로 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현장의 의료인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사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정책 설계에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선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며 "비합리적 조치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실질적인 논의체 구성"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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