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왼쪽부터) 인천성모병원 최준영 교수, 서울성모병원 이진국 교수, 한림대성심병원 황용일 교수,
(하단 왼쪽부터)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유광하 이사장, 한림대강동섬심병원 박용범 교수, 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 심평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사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약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약을 처방할 수는 없다.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치료에 20년 만에 등장한 생물학적 제제가 국내에서 허가됐지만, 비급여이기 때문이다.
약은 있다. 환자도 있다. 하지만 약값은 한 달 150만원. 2주마다 평생 맞아야 하는 주사를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에서 호흡기내과 전문의들은 "이대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절박함을 쏟아냈다.
COPD는 흡연이나 대기오염 등으로 인해 기도에 만성 염증이 반복되며 폐조직이 파괴되고 기도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4억명이 앓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유병률이 높은 편이다. 국내 환자 10명 중 9명은 60세 이상 고령자다.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최준영 교수는 "COPD는 폐 기능이 50% 이상 손실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어 진단 시기를 놓치기 쉽다. 이미 손상된 폐는 약으로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예방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COPD 유병률은 12.7%에 달하지만 진단율은 2.3%, 치료율은 1.2%에 불과하다. 특히 40대 환자에서는 거의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 교수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비교해도 인지율과 치료율이 가장 낮은 질환"이라고 지적했다.
진단과 치료의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폐기능검사(PFT) 부족 ▲증상의 경미함 ▲질환 인식도 저조 ▲1차 의료기관의 역량 미흡 ▲복잡한 급여 기준 등을 복합적으로 꼽았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이진국 교수는 COPD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급성악화'를 꼽았다. 이는 호흡기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약제 추가가 필요한 상태로, 반복될 경우 폐 기능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사망 위험도 높인다.
이 교수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 수 있는 병이 바로 COPD"라며 "퇴원하더라도 대부분 산소줄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고, 이전 상태로 회복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COPD 환자는 약 30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치료를 받는 환자는 20만명, 반복 악화를 겪는 고위험군은 약 9만명에 이른다.
그는 "이들은 1년에 한두 번 이상 악화를 겪고, 한 번 입원할 때 평균 260만원 이상이 든다"며 "직접 의료비 외에도 교통비, 생산성 손실, 간병비 등까지 포함하면 사회적 부담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연구에 의하면 COPD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부담은 약 1조 4000억원에 이르며, 1인당 비용(747만원)은 허혈성 심질환이나 당뇨병보다도 높았다. 고령이 주요 위험 요인이기 때문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는 대비가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다.
고위험군 COPD 환자, 국가적인 대응 필요
의사들은 고위험군 COPD 환자에게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 '듀피젠트(두필루맙)'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흡입제를 써도 악화가 반복되는 환자에겐 듀피젠트를 쓰도록 국내외 가이드라인 모두에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비급여 상태이고, 한 달 약값이 150만원이다. 게다가 2주마다 평생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듀피젠트는 아토피, 천식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해 왔으며 미국, UAE, 독일, 룩셈부르크, 러시아,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등 다양한 국가에서 급여를 적용 중이다.
이 교수는 "우리보다 경제력이 낮은 국가에서도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나서고 있다. 약은 있지만 의사는 처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황용일 교수는 COPD 치료 환경은 지난 20년간 큰 변화 없이 정체돼 있었다는 점을 들며 "두필루맙의 도입은 급성악화 부담을 줄이는 데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COPD는 단순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 전신 염증으로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당뇨, 우울증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향후 환자 수는 고령화로 인해 더욱 증가할 것이 뻔하다.
이에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는 국가적으로 COPD 질환에 대한 대응을 요구했다.
유광하 이사장은 "COPD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호흡기 건강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존 치료제로는 급성악화를 조절하기 어려운 고위험군 환자들이 있으며, 이들에게 보다 폭넓은 치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COPD는 의료적·정책적으로 다층적 대응이 필요한 질환이라는 데 전문가들이 공감했다.
한림대강동섬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박용범 교수는 호흡곤란은 나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노출에 따른 폐질환의 결과임을 언급했다.
따라서 그는 "국가차원에서 질병청 등이 국가검진에 폐기능 검사 도입, 위험인자 관리 및 백신 강화, 진단 및 치료 관련 교육을 강화해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구축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식·COPD 치료용 생물학제제는 급여 기준이 과도하게 엄격하고, 높은 약가로 인해 접근성이 낮으므로 호흡기 장애 환자들을 위한 산정특례 확대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도 COPD의 심각성과 급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제한된 재정 속에서 급여 적용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보건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은 "신약이라 하더라도 유효성이 입증되고 대체제가 없으며 중증질환이라면 충분히 보상돼야 한다. 오늘 제기된 급여 필요성도 내부 검토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사노피는 듀피젠트 COPD 적응증에 대한 급여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듀피젠트의 임상적 유용성을 먼저 평가하고 있으며 이후 병원 이용률 감소, 악화 속도 지연 등의 효과를 바탕으로 비용효과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모든 약제를 동시에 급여화할 수는 없고 예후가 나쁘고 질병 부담이 큰 질환부터 우선 논의돼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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