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공공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지방의료원 설립·증축 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감염병 대응 등으로 인한 경영상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26일 "지방의료원 확대가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추진될 경우 비효율적 사업과 국고 낭비를 초래할 뿐 아니라, 민간의료와의 역할 충돌과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당 법안은 진보당 전종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0601)과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0602)이다.
의협은 해당 법안에 대해 각 산하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뒤 보건복지부에 반대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의협은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기능과 역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의료원이 진료기능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민간의료기관과의 직접 경쟁을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방의료원이 상대적으로 낮은 진료 수준과 비효율적인 운영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채 외형적 확장에 의존하면서, 오히려 지역의 민간 의료체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조항의 신설이 실익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에는 이미 '국가적으로 긴급하거나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의 경우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며 실제로 서부산의료원, 대전의료원, 진주병원 등이 이 조항에 따라 예타를 면제받은 바 있다.
의협은 "이미 있는 제도를 두고 또다시 특례조항을 신설하는 것은 타 부처 및 타 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기존 제도 내에서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의료원의 운영 실태도 법안 추진에 앞서 선결 과제로 언급됐다.
현재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33곳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 기준 누적 적자액은 1112억원(성남의료원 제외)에 이른다. 병상 가동률도 제주 72.9%, 대구 62.5%, 서울 53.3%, 인천 46.4%, 성남 36.6%, 부산 34.4% 등으로 코로나19 이전 평균인 80%대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이처럼 전국 지방의료원의 운영 실태를 보면 이미 상당수가 경영 악화와 의료진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진주의료원이 폐업했고, 2023년 광주시립 제2요양병원이 적자 경영으로 인해 폐업했다.
의협은 "지방의료원이 경영 악화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문제 해결 없이 설립만 늘리는 것은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감염병이나 재난 상황에서 발생한 경영상 손실을 국가가 보전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감염병 대응에 따른 보전은 이미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손실보상제도가 존재하며, 공공의료기관이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 나서는 것은 설립 취지 자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만약 지방의료원에만 손실 보전을 적용할 경우, 민간의료기관과의 역차별을 유발하고 공공 역할에 대한 민간 참여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의협은 단순한 설립과 예산 투입이 아닌, 공공의료기관의 실질적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먼저라고 역설했다.
의협은 "공공의료기관은 응급·감염병 대응 등 공익 중심의 기능에 집중하고, 민간의료기관은 일상 진료에 충실하도록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며 "지역별 의료 취약성을 기준으로 한 제도 설계와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의협은 "양질의 의료 인력 확보, 질 높은 진료 수준, 효율적인 자원 운영이 공공의료의 핵심 가치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검토와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예타 면제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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