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5)는 정밀의료와 차세대 항암제의 진입 속도를 재확인하며, 세계 암 치료가 향하는 방향을 뚜렷이 제시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ASCO 2025에서 발표된 주요 임상 결과를 분석했다. 연구회는 정밀 진단 도구인 ctDNA와 더불어 Antibody-Drug Conjugate(ADC), BiTE, CAR-T 등 차세대 치료제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선택지를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 혈액 한 방울로 바뀌는 치료 전략…정밀의료의 축, ctDNA
이번 학회의 중심에는 '혈액 기반 정밀의료'의 대표 기술인 '순환종양 DNA(ctDNA)'가 있었다. 조직 생검 없이도 종양 유전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ctDNA는 진단과 예후 예측을 넘어 치료 강도 결정까지 관여하며, 진정한 의미의 맞춤 치료 시대를 예고했다.
특히 대장암 환자 대상 연구(Oral Abstract #3503)에서는 수술 후 미세잔존암(MRD)을 ctDNA로 판별해 보조항암치료의 필요성과 강도를 조절한 세계 최초의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소개됐다.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선 영상검사보다 앞서 ctDNA를 활용해 치료 반응을 파악하고 조기에 약물 치료를 조정한 결과, 무진행생존기간(PFS)이 유의하게 연장됐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는 "ctDNA는 기존 영상 기반 평가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치료 전략을 보다 정밀하게 설계하는 데 핵심적 도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혁신적'에서 '표준'으로…치료 기전의 확장과 속도
암 치료는 세포독성 항암제에서 표적치료제, 면역항암제로 발전해왔고, 이제는 이들의 장점을 결합한 차세대 항암제가 임상현장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ASCO에서는 다수의 임상시험이 기존 1차 치료제를 능가하는 성과를 보이며, 신약의 상용화 속도를 단축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이현우 홍보위원장(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은 "연구 결과가 진료현장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국내 암 치료 환경 역시 이러한 글로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항체약물접합체(ADC)는 표적치료제의 정밀성과 세포독성 항암제의 강력함을 결합한 형태로, 이미 유방암 등 고형암 치료에서 빠르게 '1차 치료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DESTINY-Breast 09 연구에서는 HER2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트라스투주맙·퍼투주맙 병용요법이 기존 탁산 병용요법 대비 PFS 중앙값을 40.7개월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보였다(대조군 26.9개월).
PD-L1 양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ASCENT-04/KEYNOTE-D19 연구에서는 사시투주맙 고비테칸과 펨브롤리주맙 병용요법이 기존 치료 대비 PFS를 유의하게 향상시켰다(11.2개월 vs. 7.8개월).
BiTE(Bispecific T-cell Engager)와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직접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최신 기전으로, 기존의 면역관문억제제(PD-1/PD-L1)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기존의 PD-1/PD-L1 억제제와 달리 이들 치료법은 T세포가 암세포와 직접 접촉해 공격하도록 유도하며,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의 장점을 동시에 갖춘 기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DeLLphi-304 연구에서는 DLL3와 CD3를 표적하는 BiTE 치료제 탈라타맙이 전체 생존기간을 기존 대비 5개월 이상 연장시키며(13.6개월 vs. 8.3개월), 새로운 표준치료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위암 및 위식도접합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CLDN 18.2 표적 CAR-T 치료제 '사트리캅타진 오토류셀' 연구(CT041-ST-01)에서도 유의미한 PFS 개선이 관찰되며, CAR-T 치료가 고형암에서도 현실화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박인근 교수는 "과거엔 신약이 진료지침에 반영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2~3년 만에 진료지침에 반영될 만큼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이번 ASCO에서도 혁신 신약들이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임상에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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