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돌봄 주체로"‥'통합돌봄' 제도화 앞두고 정읍 실험

주민 16명이 사례관리 전 과정 수행…"전문가 못잖은 성과 확인"
정부 시범사업과 다른 농촌형 모델…"주민 조직화 법제화 시급"
"공무원 협력 의무 없어 자원 연계 제한"…보고서서 한계도 지적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07 11: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위기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닥친 지역은 인구감소와 의료자원 부족을 겪는 농촌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본사업 전환을 예고했지만, 농촌을 대상으로 한 주민주도형 모델의 구체적 실증은 많지 않았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전북 정읍에서 '주민이 주도하는 통합돌봄'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인구감소지역에서의 주민주도형 보건·복지 통합사례관리: 증례 시리즈 연구'를 통해, 정읍시 읍면 지역에서 지역 주민 16명이 '마을돌봄매니저'로 활동하며 보건·복지 통합사례관리를 수행한 결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역 주민이 노인의 보건·복지 욕구를 파악하고 지역자원을 연계하며, 통합사례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정부가 추진해온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의 제도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2018년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2022년부터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운영해왔다. 지난해에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을 제정했고, 2026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농촌은 도시와는 달리 의료 및 돌봄 인프라가 열악하고 교통 접근성도 떨어진다.

연구팀은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선도사업 모델을 농촌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농촌의 환경적 특성을 인지해 인적자원으로 지역 주민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담긴 구체적인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촌형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형의 핵심은 비공식 자원을 활성화하는 데 있으며, 주민이 지역자원을 파악하고 지역의 공동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지역주민 중심의 돌봄 안전망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정읍시의 실험은 2024년 4월부터 8월까지 진행됐다. 연구진은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지역 주민 16명을 '마을돌봄매니저'로 명명하고 각 읍면에 배치했다. 이들은 대상자 발굴부터 욕구 조사, 케어플랜 수립, 서비스 연계와 모니터링까지 사례관리 전 과정을 수행했다. 전문가가 아닌 주민이 이 같은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실험의 의미는 작지 않다.

해당 프로그램은 PRISMA 모형(서비스 조정·협력, 단일 진입점, 단일 평가 도구, 사례관리, 개인별 맞춤 서비스, 정보공유 시스템)에 기반해 구성됐으며, 정기적인 사례회의를 통해 3건의 대표 증례를 분석했다. 일부 고립된 노인은 공공기관보다 이웃인 매니저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다.

연구팀은 "마을돌봄매니저의 사례관리는 주민 간 사회적 관계망 강화, 의사소통 증진, 근접성과 지속성을 높임으로써 효과적으로 노인의 돌봄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을돌봄매니저는 다양한 직업적 배경과 경험을 갖춘 지역 주민이었다. 이들은 돌봄 욕구 조사와 케어플랜 수립은 물론, 온돌 프로그램(집단 건강증진 프로그램) 운영, AI 안부전화(케어콜) 모니터링까지 폭넓은 활동을 수행했다.

또한 사례관리 실천과정은 디지털 플랫폼 '케어넷'을 통해 전산화됐다.

연구팀은 "사례관리 실천과정을 기록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해 돌봄 디지털 전환의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과와 가능성이 확인된 반면, 제도적 한계도 분명했다.

연구팀은 "건강문제 접근의 어려움과 복지자원 정보 부족으로 복합적 요구를 가진 사례는 자원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참여했던 지역사회 자원의 소극적 대응으로 실효성이 제한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합동 사례회의 이후 실제 공공자원의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례들이 반복됐다.

연구팀은 "주민에 의해 자원이나 인력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통합돌봄지원법의 법적 효력이 아직 없어 공무원 조직을 움직일 동력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며 "공무원 조직은 마을돌봄매니저와 협력할 의무가 없어 후속 조치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자원연계 과정과 성패에 영향을 미쳤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주민의 역할을 단순한 보완재가 아닌, 통합돌봄의 핵심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구팀은 "지속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개입이 미치는 장기적인 효과를 평가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역 주민과 공공기관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법률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주민 조직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통합돌봄을 위해서 주민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식, 비공식 자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전략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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