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상위 제약사를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제조역량 혁신을 고도화하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선 처벌보다 규제 개선, 약가 지원과 같은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업계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1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 주최 '국민건강 안전망 구축을 위한 의약품 제조역량 강화방안'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품질혁신을 주제로 토론에 나선 하나제약 이삼수 사장은 제도적 측면에서의 당근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사장은 최상위 제약사의 경우 이미 글로벌 제약사와 품질 수준에서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하드웨어는 다소 앞설 수 있다는 업계 인식을 공유했다. 반면 중간 수준 제약사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되며, 소프트웨어인 밸리데이션이나 데이터진정성(DI, Data Integrity) 측면에선 많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차이는 해외 진출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최상위 제약사의 경우 해외 등록을 통한 연구개발 자료 수준 향상과 글로벌 GMP 점검을 통한 품질 수준 향상이 이뤄졌고, 제네릭 위주인 국내 제약사는 가격경쟁도 유통 채널 확보도 어려워 해외 진출을 통한 품질 수준 향상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에 따라 업계 전반적인 품질혁신을 이루기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처벌보다는 당근을 제시해 품질혁신이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사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장하는 QbD 도입이 더딘 이유를 예로 들었다. QbD를 통해 의약품을 개발하면 품질혁신은 이룰 수 있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져 약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좋은 의약품을 개발하더라도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처벌 위주보단 당근을 제시해 품질혁신이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약가 우대나 허가 기간 단축 등 당근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가 곤란하다면 GMP나 밸리데이션이 시행된 역사처럼 QbD를 권장 사항으로 운영하다 의무사항으로 전환하는 방법이나, 의무사항 전환 전 제네릭 허가 기간을 QbD로 개발하는 기간만큼 연장해 시행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과 LG화학은 품질혁신 사례를 공유하며 정부 지원 필요성을 당부했다.
이전평 대웅제약 생산본부 오송센터장은 스마트 팩토리 구축 현황을 소개했다. 대웅제약 오송공장은 스마트팩토리로 건설돼 고도화해나가는 단계에 있다. ICT 활용 정도와 자동화 수준에 따라 나뉘는 스마트 팩토리 인증 5단계 가운데 3번째인 레벨3(자동 제어)에서 고도화 단계인 레벨4(최적화 및 예측)로 진입하고 있다.
무인지게차(LGV)와 수직 이송 시스템(VTS) 등 로봇을 활용한 무인물류 체계가 활용되고 있고, 사람에 의한 오류를 방지하는 '폐쇄형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공정 데이터가 실시간 자동저장되는 품질운영시스템(QMS)으로 데이터 완결성도 확보된 상태며, 제조지원시설에 IoT와 스마트센서를 적용해 설비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예측유지보수도 실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다품종 소량생산이 많은 국내 제약산업 특성은 RPA 기반 품질문서 자동화, QbD와 CPV 적용 등 도입에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한계도 짚었다.
이 센터장은 "RPA를 기반으로 한 품질문서 자동화, QbD와 CPV 적용 등에 있어선 대부분 시범적 수행을 시도하는 단계"라며 "많은 제약사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있어 기술 개발과 표준화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 소진언 CMC연구소장은 연속제조공정(CM) 도입 현황을 소개했다. CM은 전통적인 배치 생산방식과 달리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생산 단계에서 중단이 없어 공정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염도 최소화할 수 있다. 운전비용과 제조시간, 에너지 비용, 제조소 면적, 설비투자비용, 제품품질 불량 등에서 장점을 갖는다.
LG화학은 CM 적용을 위해 2018년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오송 공장에 4만 태블릿(tablet)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CM 설비를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연구 중이다. 이에 더해 실시간 출하 시험(RTLT)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업체 가운데 CM을 적용해 허가를 받은 사례는 없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필요한 것은 물론 도입·허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작용한다.
LG화학 CM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소 연구소장은 CM 국내 도입 가속을 위해선 당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첨단기술 인프라 지원, 세제 혜택, 보조금, 금융 지원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소 소장은 "국내 제약산업은 연속제조공정 도입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기술 개발·적용 사례가 부족한 현실"이라며 "국내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경원 서울대 약대 교수, 김춘래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
서경원 서울대약대 교수(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는 이날 소개된 품질혁신 기술에 대해 '가야만 하는 방향'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예산과 규제기관 유연성, 기존 시스템과 연동에 따른 연착륙 기간 필요, 전문인력 부족 등 네 가지 어려움으로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서 교수는 혁신 기술이나 공정 개발에 특화된 예산 및 산업계와 소통을 통한 식약처 규제 유연성 확보, 융합형 인재 양성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식약처는 규제기관 입장에서 새로운 기술과 기준을 산업에 안착시키기 위한 지원과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소통과 협력 강화 의지를 나타냈다.
김춘래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최신 기술 도입이 촉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며 "제시된 의제들을 장기적으로 논의해서 지원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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