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국내 출생아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고위험 산모 비율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산아, 저체중아, 다태아의 비율도 함께 늘면서 고위험 분만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의료계는 분만 인프라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부인과는 이미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고위험 산모를 위한 진료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분만 의료기관 감소는 이미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전국 63개 지자체에는 분만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으며, 수도권 외 지역의 분만 접근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고위험 임산부 치료를 담당할 의료진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유입 부족도 겹치며 안정적인 분만 시스템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주요 병원들은 최근 분만 경험이 있는 개원가 산부인과 전문의를 긴급 당직 인력으로 투입하고 있다. 야간에 응급 이송되는 고위험 산모는 늘고 있지만 이를 진료할 의료진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대학병원(빅5)의 산과 전임의는 2007년 20명에서 올해 9명으로 감소했고, 전공의 이탈까지 겹치며 인력 공백이 커졌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현재 158명인 산과 교수가 2032년 125명, 2041년에는 59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의 고령화도 뚜렷하다. 평균 연령은 54.4세로, 30대 이하 전문의는 전체의 11.6%(708명)에 불과하며, 30세 미만은 단 9명에 그친다. 지역별로는 경북(60.8세), 전북(59.6세), 전남(59.1세) 등에서 고령화가 심했고, 전국 평균보다 낮은 지역은 대구(54세), 경기(53세), 서울(51.8세), 세종(51.5세) 등 네 곳뿐이다. 여성 인구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전국 평균 0.24명이며, 경북은 0.16명으로 가장 낮았다.
의사회는 "고령 전문의의 재취업과 진료 참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의료현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대상으로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후보상은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의료 손실을 보전해 진료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지불제도다. 이미 지난 2023년부터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에 먼저 도입돼 9개 기관에 약 564억 원의 손실 보전이 이뤄졌으며, 이번에는 그 대상을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로 확대한 것이다.
복지부가 지난 3월 12일부터 26일까지 약 2주간 해당 센터를 대상으로 참여 기관을 모집한 결과,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북대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총 10개 기관이 신청했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 운영 상의 보완점과 현장 애로사항을 검토한 뒤, 오는 2026년부터 전체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대상으로 본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의사회는 "지역 분만 병원도 고위험 산모 진료의 최전선에 있다"며 "사후보상 적용 대상을 지역 분만 병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했다. 더블유여성병원 이석수 원장은 저수가와 높은 소송 배상액, 신생아 감소 등으로 인해 산부인과 병원들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특히 분만을 전담하는 산과 분야는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신규 전문의 유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는 환자 이송 시스템 붕괴와 마취 인력 부족 문제를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이 원장은 "조산 위험 산모가 병원을 찾지 못해 전국을 전전하다가 결국 본원에서 분만한 경우도 있었다"며 "대학병원에서도 조산아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정도로 인력과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신생아 중환자실(NICU) 부족 문제도 심각했다. 중증 신생아는 24시간 밀착 진료가 필수지만, 현실적으로 전원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개인병원에서 급하게 전원을 요청해도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기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마취 인력난도 분만 인프라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 원장은 "마취과 전문의 구인이 어려워 초빙료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그럼에도 야간 산부인과 수술은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 수가는 14만 원 안팎이지만 실제 지급되는 초빙료는 훨씬 높고, 이마저도 수급이 원활치 않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왜곡된 분만 수가, 마취 수가의 불합리성, 환자 이송 체계 붕괴,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책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산부인과를 궁지로 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실질적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정부가 NICU 확충, 전공의 복귀, 수가 개선 등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분만 인프라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며 "이제는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학술지에 게재된 '주요국의 임산부 및 신생아 진료협력체계 구축 현황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이미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강화해 고위험 산모 및 신생아 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공동관리 수가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은 산모 건강 네트워크를 통해 임신부터 산후 관리까지 포괄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호주는 환자 상태에 따라 병원을 배정하는 계층별 주산기 네트워크를 운영 중이며, 캐나다는 가정의를 중심으로 한 협력 네트워크를 갖추고 의료진 인센티브를 통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아직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이 미흡한 상태"라며 "진료 연계 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의료진 인센티브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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