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체계의 다음 전환점은 '집'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병원에서 머물 수 없는 환자들이 거주지 중심의 돌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절실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낮은 수가, 법적 제약, 협업 인력 부족이라는 '3중의 벽' 앞에 현장 의료진은 방문진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17일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재택의료학회·대한의사협회·재택의료 특별위원회 공동세미나에선 방문진료의 현실을 진단하고, 제도적 장애를 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됐다.
◆"환자 90%는 만족, 그런데 왜 의사는 못 하나?"
집으로의원 김주형 원장은 3년 전부터 본격적인 방문진료를 시작했다. 오랜 진료 경험 끝에 "아급성기 병원과 재택 중심의 진료 시스템이 한국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원장은 방문진료를 가로막는 현실을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방문진료에 대한 환자 만족도는 90%에 달하지만 의사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홍보 부족, 낮은 수가, 복잡한 행정, 인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내년부터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이 시행되지만 실행은 지자체 몫으로 남겨진다. 현장 의료진은 여전히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운 상태다.
2023년 의사 인식조사에서 의사들 43.4%가 '조건만 된다면 방문진료를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제도만 정비되면 의사들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의 법 제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김 원장이 운영 중인 진료 시스템은 '스마트 방문진료' 모델이다. 상담간호사-케어매니저-방문간호사-의사 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케어허브'라는 자체 개발 앱을 통해 진료 의뢰, 스케줄링, 진료기록 공유가 이뤄진다.
김 원장은 "이제 웬만한 검사는 집에서도 대부분 가능하다. 결국은 플랫폼 중심의 '거주지 중심 의료'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의사 1인당 환자 수 세계 1위, 방문진료 여력 자체가 없다"
서울봄연합의원 이충형 원장은 방문진료의 제도적 한계를 수치로 짚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원은 전체 의원의 2.8%에 불과했는데 방문진료 혜택을 받은 환자는 전국적으로 약 2만 3천여 명에 그쳤다. 최대 150만명의 잠재 수요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 원장은 특히 일차의료 의사들의 현실을 꼬집었다. 주당 평균 진료시간이 50시간을 넘고, 행정·노무·세무 업무까지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방문진료까지 수행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단독 개원의가 80%를 넘는 구조에서 방문진료 팀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규 개원의에 대한 집단 개원 유도, 단독 개원의의 주 1~2세션 방문진료 참여 지원 등 정책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적 정비도 중요했다. 의료법 33조에 따라 원칙적으로 병원 외 진료는 제한돼 있는데, 이 중 방문진료는 예외로만 허용돼 있다.
이 원장은 "지금처럼 예외 조항에만 기대기보다 재택진료를 전제로 한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오진 가능성, 모니터링 한계, 중증도 높은 환자 등 방문진료의 특성을 고려해 수가체계 전면 재정비도 요구됐다. 따라서 이 원장은 ▲초진 평가 수가 ▲간호조무사 수가 가산 ▲산정특례 질환 본인부담 완화 ▲팀 단위 재활·영양중재 수가 신설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 "의사에게 모든 걸 짜오라는 구조, 현실적으로 불가능"
동동가정의학과의원 백재욱 원장은 '지역의료 활성화' 관점에서 방문진료의 제도적 불균형을 지적했다.
백 원장은 "수가만 마련한 채 나머지는 모두 의사가 직접 만들어가라는 것이 지금의 구조다. 개원의가 직접 케어팀을 고용하고, 기획하고, 실행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역자치단체가 직접 케어플랜센터를 설치하고, 케어플래너(코디네이터)를 고용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원장은 "현재는 건강보험공단 재정만 의지하고 있지만,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구조가 정착돼야 실효성 있는 재택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의사회가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서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지자체와 협력해 환자를 발굴하고, 노인회·장기요양기관과 연결해 홍보에 나서야 시범사업의 지속 가능성도 보장된다"고 덧붙였다.
세 연자의 발표를 종합하면 한국의 방문진료는 의사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진입 장벽과 구조적 결함에 가로막혀 있다는 공통 인식으로 수렴된다. 제도는 마련됐지만 운영은 방임되고,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가로막혀 있는 현 상황에서 '단순한 제도 시행이 아니라 실행 구조 개편'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주형 원장은 "결국 환자에게 손을 내밀고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며 의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즉 현장 중심의 방문진료 구조 개편을 촉구했다.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이**2025.06.18 09:25:04
귀찮은 건 지자체가 하고 의사는 돈 되면 하겠다 이런 생각? 환자 대 의사 수가 부족하면 의사를 늘려야 맞지
작성자 비밀번호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