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개혁의 일환으로 종합병원과 병원의 구조 전환, 공유 인력 운영, 지역 내 진료협력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지역의료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한국 의료기관의 대다수는 의사가 직접 개설한 개인사업자 형태다. 이는 의료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 확보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으며, 의료기관의 법인화 필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의료기관 개설 방식이 개인 개원의에 과도하게 의존돼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의료기관 법인화 현황과 시사점'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현행 법제도와 행정 체계가 의사 설립 의료기관의 법인화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법인화 허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의료기관 법인화의 효과로 ▲의료 공공성 강화 ▲의사의 과도한 책임 부담 완화 ▲환자의 진료 선택권 확대 ▲지역 의료공급 안정성 제고 등을 들었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법인의 비영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법인화=영리병원'이라는 오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국내 의료기관의 법인화가 저조한 가장 큰 원인은 의료법인이 사실상 비의료인에게만 허용돼 왔고, 의사에게는 선택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외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의료기관의 법인화를 법적으로 허용하면서도 공공재적 성격을 병행 관리하고 있으며, 단순한 법인화가 아닌 의료체계 내 공익적 기능 수행을 동시에 고려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보고서는 의료기관 법인화의 장단점도 함께 짚었다. 현행 의료법과 판례상 의료법인은 재산 출연을 요건으로 하는 비영리 재단법인만 허용되고 있어 초기 자본금 부담이 크고, 설립 절차 또한 복잡하다. 여기에 설립 이후에도 소관 부처의 엄격한 감독을 받는 구조는 법인화를 가로막는 주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법인은 대표자의 사망이나 은퇴와 무관하게 병원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경영 안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세 측면에서도 개인사업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으며, 수익을 인력·시설 확충이나 연구개발 등에 재투자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비영리성과 공익 목적이라는 법인 고유의 성격상 수익 배분에는 제약이 있으며, 회계에 대한 외부 감시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보고서는 법인화가 의료 공공성과 맞물려 설계될 경우,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와 의료 접근성 강화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다학제 협진, 지자체 연계 사업, 지역사회 기반 의료 강화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수익구조가 단순한 의원의 경우 법인 유지 비용이 부담될 수 있으나, 세제 혜택이나 수가 조정 등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2차 의료기관 역시 법인화의 필요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전문과 운영, 고가 장비 투자, 인증제도 대응, 연구·교육 기능 강화 등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 법인화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병원 비중이 높은 부산과 광주처럼 지역 내 병원 자산이 집중된 경우, 법인화를 통해 자산관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분석을 바탕으로 보고서는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의료법인 모델로 '의료 전문 법인'을 제안했다. 이는 의료기관의 공공성 보완과 의료서비스 전문성·효율성 제고, 자산 보호 및 조세 효율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의료 전문 법인은 의사 1인 또는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해 설립 주체를 명확히 하되, 비영리 사단 또는 재단법인의 형태로 자산 귀속을 제한한다. 자산 상속 및 양도는 가능하되, 비의료인의 이사회 의결권은 제한되며, 이사회는 원칙적으로 의사로 구성하되 전문 경영인 도입도 허용된다.
조세 체계는 배당금지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성과에 따른 일정한 보상을 허용해 지역 법인 및 의사 유입을 유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일본의 비영리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독일·캐나다처럼 일정 부분 수익성을 보장해 투자의 유연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접근이다.
의료 취약지역의 경우 법인 수익은 의료 및 관련 업무에 재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법인세·지방세 감면과 의료인 이주 시 소득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병행해 법인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독 체계는 보건복지부와 광역 지자체가 병원과 법인을 관리하며 면허는 의사 법정단체가, 회계는 외부 감사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한다. 이는 일본 지자체, 독일 소재지 관청, 캐나다 보건 전문직 규제기관의 감독 모델을 참조한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진이 제안한 의료 전문 법인은 의료기관 법인화를 지원하고 의료인의 지역 유인을 높여 지역 의료서비스 및 지역경제의 불균형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며 "설립 주체를 의사로 한정해 비의료인의 무분별한 진입을 차단하고, 일정 범위 내에서 재산권 행사를 인정한 점이 핵심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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