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경장식 지원 축소, 환아의 시간과 기회를 빼앗는 결정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11 06:00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몇 달 전, 한 크론병 환아 보호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특수조제분유(경장영양식이)를 먹으며 눈에 띄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원이 끊기게 됐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상태가 나빠져 결국 '독한 약'을 써야 할까 두렵다고 했다. 목소리 속 떨림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보호자들은 모두 혼란과 분노를 토로했다. 보건소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는 최대 1년까지만 지원한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예고도, 유예도 없이 날아든 한 통의 문자와 전화. 안내문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 절망한 보호자들에겐 그 문장이 더 큰 상처로 남았다.

보건복지부는 1991년부터 희귀난치성 소화기 질환을 앓는 19세 미만 아동에게 특수조제분유(경장영양식)를 지원해왔다. 기존 제도는 최초 신청 시 8주간 집중치료 기간 동안 필요량 100%를 지원하고, 이후 6개월마다 진료확인서를 제출하면 매달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는 추가 지원이 최대 1년까지만 가능하게 바뀌었다. 재발 환자도 예외 없이 제외됐다.

크론병 환아에게 이 분유는 단순한 보충식이 아니다. 장기적인 염증으로 인해 소화·흡수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체중과 성장을 회복시키고 염증을 줄이며, 장 점막을 강화하는 '치료의 일부'다.

최근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이은주 교수를 만나면서, 경장식의 지원 축소가 큰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완전경장영양(EEN)이 소아 크론병에서 6~8주 내 관해를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내시경적 점막 치유까지 가능하다는 근거도 있다. 관해 후에는 부분경장영양(PEN)을 장기적으로 병행해 재발을 줄인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PEN 덕분에 수년간 재발 없이 지내는 환아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지원 제한 이후 PEN을 유지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경장식을 하루 2~3포씩 먹으면 월 수십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경제적 사정으로 섭취를 줄이면, 재발 위험이 커져 결국 고가의 생물학제제나 스테로이드 치료로 이어진다. 의료비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아이는 1년 안에 안정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아이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크론병은 발병 시기, 염증 범위, 치료 반응 속도가 제각각이어서 치료 기간을 환자별로 달리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제도는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시계를 들이댄다.

정부는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고 했지만, 정작 소아소화기 전문의나 임상영양사와의 공식 협의는 제한적이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물론 일부에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경장식을 되파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관리·유통 구조의 문제이지 제도를 축소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처방 기반 지급, 전산화된 수급 관리, 수령 내역 추적, 보호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결국 이 사안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기회'다. PEN을 이어가는 시간, 재발을 늦추는 기회, 그리고 아이들이 정상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지원 축소로 절약한 예산이 장부에 남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잃는 것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취재를 시작하게 만든 그 보호자의 말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죽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시 아플까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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