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생명과 맞바꾼 행정절차‥'허가초과 항암요법'의 벽

규제와 임상 현장의 괴리, 행정 부담이 환자 치료 지연으로 이어져
"전문가 중심 심의체계와 패스트트랙 도입으로 접근성 강화 필요"
'효과적일 수 있는 약제 시도할 자유', 환자에게 보장돼야 할 권리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29 18:10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재련 교수.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효과가 입증됐음에도 허가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환자가 치료 기회를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항암치료조차 행정 절차와 규제 장벽에 막혀 늦어지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은 '허가초과 항암요법(off-label chemotherapy)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구했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제심포지엄에서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재련 교수는 "효과적일 수 있는 약제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가초과 항암요법은 표준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불충분한 상황에서 특히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행 사전승인 제도는 이런 임상적 발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적시에 적용하기 어렵다.

현재 허가초과 항암요법을 쓰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은 의약품임상시험실시기관이어야 하고, 암 관련 전문의가 참여하는 다학제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신청은 대체 약제가 없거나, 금기 등으로 사용할 수 없거나, 기존 치료보다 임상적 효과가 더 기대될 때 가능하다.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데, 의학적 타당성·대체 가능성·비용효과성 세 가지 항목이 기준이다. 

의학적 타당성은 교과서, 가이드라인, 임상문헌, 학회 의견을 검토하고 대체 가능성은 기존 항암화학요법과 약리기전·효과·부작용을 비교해 평가한다. 비용효과성은 필요시 약물경제성 평가까지 포함해 산정한다.

하지만 실제 승인 결과는 냉혹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허가초과요법 신규요법 인정은 468건(56%)이었지만, 불인정도 367건(44%)에 달했다. 항암요법은 2020~2022년 사이 불승인 비율이 56.9%로, 일반약 불승인률(3.8%)과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이 과정에서 불승인 사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의 불만이 컸으며, 다시 신청하는 의사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실제 환자 피해 사례도 있었다. 이 교수가 2016년 당시 진료했던 매우 드문 유전 형태의 31살 남성 신장암 환자가 있었다. 표준치료법인 토리셀(템시롤리무스) 치료를 두 차례 시행했으나 실패했고, 암 제거 수술 뒤에도 간 등으로 전이됐다.

그런데 2014년 유럽에서 같은 유전형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베바시주맙과 엘로티닙을 병용한 결과 41명 중 38명의 암이 줄어들었고 2년 이상의 무진행 생존이 확인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해당 환자에게도 이 병용요법을 적용하자 매우 우수한 부분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치료는 미국암종합네트워크(NCCN) 진료지침에 2017년에야 언급돼 허가초과 사전신청이 기각됐고, 결국 환자가 효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는 승인 기준이 실제 임상 요구보다는 의약품 등록이나 급여 기준에 맞춰져 있어 최신 치료 전략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병원 내 다학제 승인 이후에도 비전문가가 포함된 위원회에서 재심사를 거치면서 종양내과 전문의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서류 작업과 장기간의 검토로 긴급 치료가 지연되고, 절차의 복잡성 때문에 사후 승인제도 활용률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심사위원회에 질환별 전문가를 포함해 임상 전문성을 강화하고, NGS 기반 사례는 대한종양내과학회나 분자종양위원회(Molecular Tumor Boards) 등 전문단체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사전·사후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디지털화해 기간을 단축해야 하며, 임상적 혜택이 입증된 허가외 치료에는 성과 기반의 선별적 급여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 교수는 "암종별 허가초과 약제 심의는 전문가 분과가 주도해야 하고, 패스트트랙과 선사용 후보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효과가 확인된 환자의 경우 약제비 환급제도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 교수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를 언급했다.

그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개인의 불가침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효과적일 수 있는 약제를 시도해 볼 자유와 권리 또한 존중돼야 한다. 지금은 따뜻한 의료정책이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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