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또 깎으라고?"‥급여 확대 한계 봉착, IBP에 쏠린 눈

'단일 약가-반복 인하' 구조에 갇힌 한국‥환자 접근성까지 제한
글로벌 추세는 적응증별 약가로 이동‥"IBP, 치료 기회 확장의 도구"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6-09 05:5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제약사가 새로운 적응증에 급여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건 '약가를 더 깎으라'는 요구다. 환자 수요와 치료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지만, 국내 약가 구조는 '단일 약가-반복 인하'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적응증 기반 신약 개발이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이 같은 구조는 신약의 국내 도입을 늦추고 환자 접근성까지 좁히는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가 다시금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다적응증 약가 체계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신약 하나가 여러 암종과 질환에 적응증을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약제의 임상적 가치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는 적응증별 약가제도 또는 유사한 가격 모델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거나 제도화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반면 한국은 최초 허가된 적응증 기준으로 단일 약가를 산정하고 있으며, 이후 적응증에 대해 급여 확대를 추진할 경우에는 약가 인하가 필수처럼 따라붙는 구조다. 업계는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혁신 신약의 국내 진입을 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최초 적응증에서 충분히 가격을 낮췄는데, 적응증이 하나 더 추가될 때마다 약가를 또 내리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 구조가 유지된다면 결국 '코리아 패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세된 다적응증 치료제 개발, 현 약가 제도로는 큰 한계

최근에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면역항암제 등 단일 성분이 다양한 질환에 적응증을 넓히는 형태가 신약 개발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MSD의 '키트루다'는 미국 FDA에서 40개 적응증을 승인받았고, 국내에서도 29개 적응증이 급여로 적용됐다. 한국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도 HER2 양성 유방암·위암 외에 HER2 저발현 유방암, HER2 변이 폐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했다.

국내 개발 신약도 이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다. 셀트리온의 '짐펜트라', 대웅제약의 '펙수클루', 유한양행의 '렉라자' 등은 다적응증 확대를 염두에 둔 개발 전략을 채택 중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이 같은 개발 방향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엔허투의 HER2 저발현 유방암 적응증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약 42%를 차지할 만큼 수요가 높지만, 지난 4월 열린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는 급여기준 미설정 판정을 받았다. 해당 적응증의 급여 확대를 요구한 청원에는 약 14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급여기준 미설정 사유로 '재정분담안 미제출'을 언급했다. 이는 제약사가 제출한 약가가 정부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업계는 엔허투가 이미 지난해 HER2 과발현 전이성 유방암 적응증으로 전 세계 최저가로 등재됐고, 복수의 위험분담 계약까지 수용한 상태여서 더 이상 인하 여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급여 확대 시 약가 인하를 전제로 한 구조는 치료 접근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한국은 급여 확대 시 '무조건적인 약가 인하'를 전제하는 약가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사용량이 늘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셈이다.

이는 글로벌 항암제 도입과 적응증 확대 모두에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항암제 개발은 단일 성분 기반의 다적응증 전략으로 전환되며 이러한 전제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발 효율 측면에서도 신약 하나로 복수의 치료 영역을 포괄할 수 있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적응증 기반 신약 개발이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행 약가 제도는 단일 적응증을 기준으로 설계된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는 ICER 임계값의 탄력 적용, 허가-급여-협상 통합 시범사업 등 신약 최초 등재 제도는 일부 개선됐지만 등재 이후 이뤄지는 급여 확대에 대한 구조는 여전히 정체돼 있다.

만약 추가 적응증의 급여 확대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거쳐도 약가는 전체 적응증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수렴된다. 급여 확대를 추진할 때마다 약가 인하가 반복되고, 평가 기간에는 기한 제한이 없어 수년 이상 지연되기도 한다. 다수의 적응증을 가진 약제일수록 반복적인 인하 요구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급여 확대 자체가 가로막히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 IBP, 임상적 가치 반영하려는 글로벌 흐름 
키트루다·옵디보·엔허투 급여 인정 개수 비교. 메디파나뉴스 재구성
IBP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적응증별로 임상적 가치와 비용효과성을 평가해 가격을 차등 적용하면 제약사는 추가 적응증 확대를 주저할 이유가 줄고, 정부는 가치 중심의 재정 집행이 가능해진다. 국내 제약사에도 다적응증 개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약가 참조 대상으로 삼는 9개국(A8+호주) 중 6개국이 IBP 또는 유사 제도를 도입했다. 키트루다, 옵디보, 엔허투 등 주요 항암제 3종의 13개 적응증을 조사한 결과 이들 국가의 급여 인정 개수는 평균 10.7개로, 한국의 6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업계는 이 차이를 치료 기회의 격차이자 제도적 후진성으로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IBP 도입이 부담스럽다면 단계적 전환부터 시도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적응증별 가중 평균가(Blended Pricing)'나 '환급률 차등 적용' 등 시범사업 방식을 통해 제도 도입 가능성을 검증하자는 방식이다.

정부 역시 관련 논의에 열린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건강보험 종합계획 시행계획에서 HER2 저발현 유방암을 포함한 여성 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 확대를 추진 과제로 명시했다. IBP는 이러한 과제를 보다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업계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치료 기회 확대라는 관점에서 약가 구조를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반복되는 인하 대신, 임상적 가치에 비례한 구조를 통해 신약의 문턱을 낮추는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IBP는 비용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약을 쓸 수 있게 하는 구조"라며 "정부가 이제는 재정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치료 기회를 넓히는 약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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